Watching 아름다워 더 슬픈 과거의 현실, 노예 12년 2014/10/23 22:39 by 데미안

14.3.9

 

 

 


 

<동명의 소설 12 years a slave 양장본 표지>

 

 

"영화 노예12년 속 모습과 현대 우리 사회 모습의 차이점은 자발성의 존재 여부 뿐이었다."

 

 

삶을 잃어버린 남자의 그 12년은 끔찍했지만 어쩔 수 없이 가진 것을 숨기고 감정을 숨기는 모습이 더 처참했다.

 

인간의 물질화에 대한 위험성을 설파적인 논법이 아니라 그저 담담히 보여줄 뿐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생기는 갈등은 허울 좋은 구실 속에서 신을 능욕하며 해결된다.

 

가축, 그 이하의 대접은 어쩌면 인간이기 때문에 생길 수 있었다.

 

생각을 가지고 가능성을 지닌 인간을 대하기에 그 내면에 깊숙히 자리잡은 두려움과 죄의식으로 말미암아 철저한 자기 합리화 만이 그 순환을 연장시켜주기 땜이다.

 

순환이 끊겼을 때 오게될 자의식의 파괴가 그들에게 있을 유일한 짐이었다.

 

이는 사회 구조에 대한 무의식적 받아들임과 그 구조를 등에 업고 살아가는 이의 정제되지 않은 본성의 결과물이다.

 

 

 

미국의 노예제에 대한 영화는 지금껏 많이 있었다.

 

최근에만 해도 헬프, 링컨, 장고 등의 개성 넘치는 영화들로 하여금 그 사회에 대한 상기와 함께 깊은 반성을 요구하기도 했다.

 

헬프나 링컨이 순진한 영화였다면 장고와 노예12년은 그 순진함에 대한 차디찬 현실적 답변이었다.

 

특히나 이 영화는 아름다운 배경 속에 자행되는 흑인 노예에 대한 끔찍한 학대를 무던하게 보여주며 그 안에서 변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포착한다.

 

리틀 미스 선샤인에서 니체에 빠진 아들 역으로 나왔던 폴 다노가 솔로몬을 교수형 시키기 위해 나무에 목을 메달로 발만 동동 구르게 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가장 잔인하고 아름다우며 슬픈 명장면이었는데, 그 화면의 언저리에서 자기일을 하는 모습의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 시대의 탈 인간화를 무섭도록 예리하게 비판하는 장면이었다.

 

 

 

 

배우들의 연기와 감독의 연출, 촬영과 음악, 미술이 하나가 되어 교과서적 스토리에 숨결을 불어 넣는다. (어떻게 각색상으로 오스카를 거머쥐었는지 모르겠을 정도의 진부함이 있었음에도)

 

우리는 아직 흑인박해에 대한 화면을 똑바로 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 아픔에 대한 감정은 단지 그들에게 느끼는 딱한 마음과 미안함 마음 뿐 아니라 연민의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구조적 문제에 피해를 받고 있는 우리도 마음 속에 큰 채찍자국 하나 씩을 가지고 살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그들의 상처는 끝까지 아물지 않는다.

 

아마 우리의 상처도 아물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흑인들이 들고 일어나면 백인의 삶이 무력으로라도 무너질 것을 걱정하는 장면들이 넌지시 나온다.

 

인본적 사상에 대한 얇팍한 사용까지 두고 있는 현대사회의 모순적 인생사를 우리는 선택하기 이전에 받아들인것은 아닐까?

 

 

 

 

BEST.

 

전쟁영화에 로큰롤이 빠질 수 없듯이 미국의 흑인 노예제에 대한 영화에 블루스가 빠질 수 없다.

 

그들의 삶이 만들어낸 구슬픈 소울은 아이러니하게도 너무나 아름다웠다.

 


 

 

<영화의 감동을 깨고 싶지 않다면 관람 전 보지 말아야할 영상. roll jordan ro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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