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tching 이성에 대한 본능의 통렬한 복수, 님포매니악 볼륨 2 2014/10/23 22:54 by 데미안

14.7.8

웃음 노란동글이 

 

 


 

 

 

"we are not and never will be alike"

 

 

자신을 죄인이라 지칭하던 조는 2편에 와서 점차 자신의 모습에 대한 혼란을 끼워넣기 시작한다.

 

그에 대한 셀리그먼의 조언과 위로, 해석들로 완성되어 가는 그녀의 모습.

 

섹스 중독자 들의 모임에서 대차게도 내뱉은 '난 지금의 내 모습을 사랑해' 연설 속에는 그녀의 역설적인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 삶의 모습을 마주하기 위해 부단히도 적어논 연설문을 찢게되지만 생활 속에서의 자신은 그 연설문을 낭독 하며 성적 쾌락을 어둠에 두고 있는 위선을 부릴 뿐이었다.

 

 

 

"인간성이란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있죠. 위선."

 

 

자잘한 감성에 빠지는 것을 위선이라 치부하며 극도로 싫어하지만 그녀의 삶은 위선으로 점철 되어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인간의 숙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욕망을 두르고 살아가는 인간의 삶 자체가 어쩔 수 없는 위선인 것이다.

 

욕망을 내보일 때 받게되는 질타의 시선은 질투의 시선과 다를바가 없다.

 

타인이 취하게 되는 욕망의 크기에 비례하게 될 시선의 크기가 인간의 모습인 것이다.

 

예컨데, 이는 이기적 유전자와 같은 맥락을 갖는 하나의 본능적 방어기제일 수 있다.

 

기독교는 이를 원죄라 칭하고 보헤미안은 이를 삶의 방향성으로 만들었다.

 

셀리그먼은 이를 풍부하고 고풍스러운 지식을 바탕으로 역사의 흐름 속에 대입했고 조는 마지막에서야 깨달음을 얻는다.

 

 

 

 

"물푸레 나무가 아니잖아요."

 

"그래, 이건 떡갈나무야."

 

 

물푸레 나무의 전설은 반할만큼 아름다웠지만 세상은 동화와 달랐다.

 

땅 속에 박혀버린 떡갈나무라는 본성을 물푸레 나무로 치장할 순 있어도 바꿀 순 없는 것이다.

 

그렇게 언젠가는 자신의 나무를 찾을 꺼란 아버지의 말을 듣고 만나게 되는 언덕 위의 나무 한 그루.

 

너무나 쓸쓸하고 아름다우며 천박하고 고귀한 그 모습에게서 찾게되는 자신의 본성.

 

자신의 본성을 세상과의 줄다리기 없이 마주하게 될 때 찾게 될 삶의 이유와 존재가치를 마지막에 와서야 너무나 잔인하고 슬프게 보여주고야 만다.

 

 

 

 

1편과 마찬가지로 시종일관 경박한 웃음을 선사하고 바로바로 그 웃음을 거둬들여 버리는 호흡을 같이한다.

 

그 고귀했던 이성과 그 솔직했던 감성의 만남으로 1편을 비난해 버리는 이 안하무인의 2편은 영화 역사에 길이남을 엔딩을 선사하고야 말았다.

 

어린 시절 조의 모습으로써 대비되던 이야기와 현실의 간극은 비로소 샬롯 갱스부르가 분한 조로 성장하며 드디어 그 간극을 무너뜨리고 숨막힐 듯한 호흡으로 상영시간을 지배하고야 만다.

 

이 영화는 조의 영화다.

 

조의 생명, 생각, 삶, 호흡에 따라 변화하는 영화 전체의 그것들이 완벽하게 맞아 떨어져감에 소름이 돋았다.

 

 

 

 

 

BEST.

 

공든탑을 걷어차 버리는 어떤 의미에선 충격적인 엔딩

 

 

 

 

 

 

전혀 사랑스럽지 않은 얼굴로 험난한 연기를 펼치는 그녀는 역시 사랑스러운 배우였다.

 

 

 

 

 

 

 

 

 

 

 

 

 

 

<charlotte gainsbourg - hey j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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