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tching 뉴욕의 파니핑크, 프란시스 하 2014/10/23 22:54 by 데미안

14.07.18

미소 노란동글이 

 

 


 

 

 

 

무거운 집착의 무게를 내려 놓았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

 

그리고 그런 무게를 언제라도 쓰러질지 모를 모습으로 떠 받치고 살아가는 우리들

 

어쩔 수 없다는 자신에 대한 핑계를 무던히도 해대며 대도시를 살아가지만 그런 삶의 모습은 벅찰 수 밖에 없다.

 

 

 

"그게, 설명하기가 복잡해서"

 

우리는 누군가에게 자신을 설명할 수 밖에 없을 때가 있다.

 

하지만 유창함을 갖지 못한 대다수의 평범한 우리들에게 이는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소심함? 지나치게 많은 생각? 내향성?

 

많은 수식어가 있지만 프란시스는 그 수식어를 정의하기 보단 삶 속에 녹아들어있는 모습으로써 나타낸다.

 

직업을 설명할 때나 자신의 친구를 설명할 때나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을 설명하며 구차해지는 모습들.

 

자존감의 높낮이를 떠나서 그 자존감의 형태적 특성이 다름을 이해받는 것 조차 기대하기 힘들다.

 

 

"날 3시간짜리 브런치 친구처럼 대하지 마."

 

그런 프란시스에게 유일한 베스트 프렌드인 소피는 자신의 인생을 지탱하는 인물이다.

 

소피의 존재로써 자신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고 삶의 무의미함과 회의를 털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의지하는 관계는 자기 파괴를 가져올 뿐이었다.

 

한번에 와장창, 하고 파괴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서서히 자기 합리화를 거쳐 조용히 파괴되어 간다.

 

 

소피를 잃고 삶을 찾아가는 여정은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상처받고 외롭고 계획대로 되는 것은 없고

 

하지만 프란시스는 울지 않는다.

 

 

 

사회적 동물이라는 인간은 결국 관계를 떼어 놓고 예기할 것이 전혀 없는 그런 존재다.

 

프란시스의 장황하지만 솔직하고 낭만적이었던 관계 (또는 인생)에 대한 취중 연설 씬은 영화가 하고 싶어하는 모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 순박하고 적절한 삶에 대한 요구는 의외로 이루기 힘들 만큼 커다란 것임을 우리도 각자 살아가며 느끼고 있을 것이다.

 

관계로 인해 때론 치유되고, 때론 상처받고, 때론 경박해지고, 또 구차해지는 모습은 설령 자신의 삶을 충분하다 느끼는 사람에게라도 주어지는 관계의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이 영화는 위축과 치유를 반복하며 지쳐가는 이들에게 던지는 사랑스런 편지와도 같았다.

 

 

 

 

 

 

BEST.

 

영화 '파니핑크'의 마리아 슈레더를 연상케 했던 그레타 거윅의 공감능력을 한껏 올려주는 연기

 

 

<그레타 거윅은 이 영화의 모든 씬에 등장한다>

 

 

 

의외로 잠시도 쉴 틈이 없는 빠른 호흡과 완벽했던 마무리

 

 

 

 

 

 

 

 

어마어마 했던 락앤롤 넘버들..

 

 

<t.rex - chrome sitar>




<rolling stones - rocks off>




<david bowie - modern love>




 

<paul mccartney - blue sway>



덧글

  • 데미안 2014/10/24 00:19 # 삭제 답글

    도배 끝났냐? 넌 이제 글 쓰지마라 아니 어차피 못 쓰겠지만
  • 데미안 2014/10/24 01:06 #

    블로그 옮기면서 글도 옮기고 있는데 도배하면 다른 사용자한테 피해가 가나보네요.. 이글루 처음 써봐서 실수했습니다~ 조금씩 옮겨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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